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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수성의 연구

by 줌마꼼미 2021. 4. 20.

12. 고대의 수성 연구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에서는 수성을 우아한 것, 밸리스트 라고 불렀다. 후에 헤시오도스의 영향으로 그리스에서는 아침 하늘의 수성은 아폴론, 저녁 하늘의 수성은 헤르메스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 무렵에 그리스의 천문학자들은 이 두 천체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편 로마에서는 수성이 다른 행성보다 빠르게 천구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고 머큐리라고 불렀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저서(행성 가설)에서 행성의 일면 통과 가능성을 기술했다. 또 그는 당시 일면 통과를 누구도 관측하지 못한 이유를 수성이 매우 작아서 볼 수 없거나 매우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수성

 고대 중국에서는 수성을 진성(辰星)이라 불렀고 이것은 오행과 관련이 있다. 인도 신화에서는 수성을 수요일을 관장하는 부다와 동일시했다. 북유럽 신화의 오딘도 수성 및 수요일과 관련이 있다. 마야 문명에서는 수성을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전령의 의미로 올빼미라고 불렀다. 고대 인도에서 기원전 5세기에 작성된 천문학 문서인 수르야 싯단타에는 수성의 반지름이 4,481km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현재 측정된 반지름과 오차가 1%밖에 나지 않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수성의 각지름(3.0 각분)을 이용하여 계산한 것이다. 이슬람의 천문학을 살펴보면 11세기에 알 안달루스의 천문학자, 아르자헬은 수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며, 그 궤도는 타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12세기 이븐 밧자는 두 행성이 태양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관측했다. 15세기에 인도의 케랄라 대학의 천문학자, 닐라칸타 소마야지는 부분적인 지동설을 주장했다. 

13. 지상에서의 망원경 관측

 17세기 초 갈릴레이가 최초로 망원경을 이용해 수성을 관측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망원경이 좋지 않아서 자세히 관측할 수 없었다. 1631년 피에르 가상디가 최초로 망원경을 이용해 수성의 일면 통과 현상을 관측했다. 1639년 조반니 주피는 수성의 상(phase)을 관측했다. 이런 관측들은 수성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했다. 천문학에서 아주 드문 현상 중에 하나는 엄폐현상이다. 수성과 금성은 수세기마다 서로를 엄폐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인간이 관측한 경우는 1737년 5월 28일에 일어나 경우뿐이다. 이는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존 베비스가 관측했다. 다음 수성과 금성의 엄폐 현상은 2133년 12월 3일에 일어날 것이다.

 수성은 다른 행성에 비해 정보가 부족하여 관측할 때 어려움이 많다. 1800년 요한 슈뢰터는 높이가 20km인 산을 관측하고 그림을 그렸다. 프리드리히 베셀은 슈뢰터의 그림을 이용해 자전 주기와 자전축의 기울기를 계산하여 가가 24시간 70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와 매우 차이 나는 수치이다. 1880년대 조반니 스키아파벨리는 수성을 좀 더 정밀하게 그리고 자전주기가 88일인 이유는 조석 고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수성 표면을 지도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었는데 1934년 유게니우스 안토니아디는 그의 관측 자료와 그림을 묶어서 책으로 내기도 했다. 수성을 비롯한 다른 행성의 지형의 이름은 그의 저서에서 따온 것이 많다. 

 1962년 6월에 소련의 무선전자과학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최초로 수성에 레이다를 쐈는데, 이것이 레이다 관측의 시작이다. 3년 후 고든 페텡길과 R. 다이스는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직경 300m인 전파 망원경을 이용하여 수성 자전 주기를 관측한 결과 59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관측으로 수성이 동주기 자전한다는 학설은 확립되었지만 천문학자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천문학자들은 이전에는 수성이 조석 고정 상태라고 가정하고 어두운 면은 극도로 추울 것으로 추측했지만 전파 관측으로 보니 예측했던 것보다 온도가 높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동주기 자전 이론을 포기하고, 바람에 의해 열이 분산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주세페 콜롬보는 수성 자전 주기가 공전 주기의 2/3인 것이 행성의 자전과 공전이 1:1이 아니르 3:2 공명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후에 매리너 10호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와 일치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스키아벨리와 아토니아디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상에서 수성을 관측해도 최초의 수성 탐사기가 탐사하기 전까지는 자세하게 관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상의 관측 능력도 향상되었다. 2000년 윌슨산 천문대에서 1.5m의 헤일 망원경으로 고해상도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수성 지형 부분을 제대로 보여주는 최초의 사진이다. 후에 그 사진은 칼로리스 분지보다 거대한 이중 고리 형태인 충돌 분지의 증거로 보여주었다. 수성 표면 대부분은 아레시보의 레이다 망원경을 이용한 자료를 바탕으로 5km의 해상도로 지도화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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